2012년 10월 24일 수요일

미스터리한 법 도피성!!


죄를 지은 사람이 마음 놓고 도망할 수 있는 곳. 피하기만 하면 누구도 잡을 수 없는 곳.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지만 실제로 그곳은 존재한다.

때는 AD 300년경 삼한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곳엔 죄인들을 위한 아주 특별한 장소가 있었다. 바로 ‘소도(蘇塗)’다. 소도는 국법의 힘이 미치지 못하여 죄인이 이곳으로 도망하더라도 그를 돌려보내거나 잡아갈 수 없었다.

그런데 소도와 같은 곳이 그보다 훨씬 이전에 존재했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3500년 전이다. 성경은 이곳을 ‘도피성’이라 이름했다.

[민 35:9~28]너희를 위하여 성읍을 도피성으로 정하여 그릇 살인한 자로 그리로 피하게 하라 … 그는 거룩한 기름부음을 받은 대제사장의 죽기까지 거기 거할 것이니라 … 또 도피성의 피한 자를 대제사장의 죽기 전에는 속전을 받고 그의 땅으로 돌아가 거하게 하지 말 것이니라 

BC 1500년경,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시고 실수로 살인한 자를 위해 도피성을 만들어 피난처를 제공하셨다.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아야 하는 엄격한 제도 안에서 실수로 살인한 자를 보호할 법적 도구가 필요했던 것이다(출 21:23~25).

여기서 주목할 점은 실수로 살인한 자들이 어떻게 도피성에서 나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느냐 하는 것이다. 죄의 형량에 따라 도피성에 갇혀 있거나 오늘날의 보석금과 같은 속전을 내는 것도 아니었다. 오직 ‘대제사장의 죽음’만이 감옥이나 다름없는 도피성에서, 그리고 죄에서 해방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대제사장의 죽음과 죄인들의 자유’. 이 미스터리한 법의 진실은 무엇인가.

 [히 11:13~16]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성경은 본래 우리의 고향이 하늘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지구는 하늘에서 죄를 지은 죄인들이 모여 사는 감옥, 곧 영적 도피성인 것이다. 그렇다면 도피성에서 해방받는 방법은 무엇일까. 오직 대제사장의 죽음뿐이었으니, 죄인인 우리가 하늘 본향에 돌아가기 위해서는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의 죽으심이 반드시 필요하다.

[히 5:8~10]그가 아들(예수)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구약시대 대제사장의 실체는 예수님이다. 대제사장이 죽어야 도피성의 죄인들이 해방되었던 역사는 예수님의 죽음으로 영적 도피성의 죄인들, 즉 지구에 사는 사람들이 해방될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영적 도피성에서 해방받아 영혼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유언으로 남겨주셨다.

마 26:19, 26~28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희생이 담겨 있는 유월절만이 하늘 본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모든 인생들은 지금 영적 타향살이 중이다. 타향살이하는 외국인과 나그네의 삶은 고단하고 힘들다. 늘 고향을 그리워하기 마련이다. 만약 유월절을 지키지 않는다면 영원히 하늘 고향에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2012년 10월 22일 월요일

믿음으로 변해가는 개인과 세계 [하나님의교회/김주철목사.]



믿음으로 변해 가는 개인과 세계

'천국가족'이상적 모습·사랑의 메시지 담아


새책 <오라, 성령과 신부에게>는 하나님의 교회 세계복음선교회 총회장 김주철 목사의 설교집이다.

왜 하나님은 '우리'일까. 인류를 오라고 부르시는 성령과 신부는 누구일까. 성경상 생명수를 주는 존재는 하나님인데 왜 하나님이 한 분이 아니라 두 분일까.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 원전에서 '하나님'이 2500여 회나 복수형 명사 '엘로힘(하나님들)'으로 기록된 이유는 뭘까.

김주철 목사는 이런 질문에 '성령'과 '신부'는 창세기에서 당신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라고 역설한다.

그의 다섯 번째 설교집인 이 책에서 저자는 하나님 안에 영생, 천국이 있고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있으니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을 먼저 발견한 자들이 이 위대한 발견을 온 세계 구원을 위해 알리고 전하자고 촉구한다.

서문에는 "이 시대를 구원하기 위해 성육신하신 성령과 신부, 아버지와 어머니 하나님의 가르침을 일부라도 알리고자 하는 마음"이, 33편의 설교에는 성령과 신부가 전하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메시지가 차곡차곡 담겼다.

이 책은 '성경 첫 장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창세기 1장 26절). 성경 마지막 장에서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신다. "오라,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요한계시록 22장 17절)'란 내용을 강조한다.

전반부는 믿음으로 변화되어 가는 개인과 세계를, 중반부는 하늘 소망 속에 더욱 진실하고 풍성해지는 삶을, 후반부는 서로 배려하고 섬겨주며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하나님을 닮아가는 '천국 가족'의 이상적인 모습을 그렸다.

성경은 사람이 기록한것이라서 믿을수없다??? [안상홍님]


성경을 믿지 못하는 자들 가운데 어떤 자들은 “성경이 사람에 의해 기록된 책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러한 주장은 너무나도 어리석은
주장인지 예를 들어 살펴봅시다.

한글을 모르는 할머니가 이웃집 학생에게 편지를 대신 써달라고 부탁했다고 하자. 할머니와 학생 중 누가 진정한 저자라고 생각하는가? 분명 할머니다. 그 편지에는 할머니의 생각과 말씀이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학생은 단지 할머니의 말씀을 듣고 기록하는 역할만 했을 뿐이다.

오늘날 성경은 사람이 기록한 책이니깐 믿을수  없다는 주장은 마치 편지를 학생이 썼기 때문에 할머니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는 것과 동일하다.

성경은 삼십여 명의 사람을 동원해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이요 생각이다.

벧후 1:20~21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생각을 받아서 말한 것이 성경인 것이다. 따라서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은 사람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생각과 예언이다. 그렇다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신 18:21~22 네가 혹시 심중에 이르기를 그 말이 여호와의 이르신 말씀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 하리라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지니라 

성경에 증거로 삼을 말이나 성취함이 없으며 여호와의 말씀이 아니라고 했다. 성경이 여호와의 말씀인지 아닌지를 알고 싶다면 성경의 예언을 살펴보면 된다. 성경 예언이 현실로 성취가 됐다면 성경은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필자는 모든 사람들이 성경에서 하나님의 존재와 그 말씀이 사실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패스티브닷컴 살아있는 성경_지구창조, 그 순간으로’,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참조).

이제 예언을 살펴 보았다면 성경이 사람에 의해 기록 되었으니 맏지못한다는 주장은 거짓임을 틀림없이 아셔야 할것입니다

구약과 신약의 안식일


 흔히 안식일하게 되면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구약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은 지키는 방법이 구약시대와 신약시대가 다릅니다.

그럼 먼저 구약의 안식일부터 살펴봅시다

민 28:9~10 안식일에는 일년 되고 흠 없는 수양 둘과 고운 가루 에바 십분지 이에 기름 섞은 소제와 그 전제를 드릴 것이니 이는 매 안식일의 번제라 상번제와 그 전제 외에니라

이렇게 구약에 제사를 드리던 것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감으로써 성전도 제사장도 없었기에 자기들의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 “회당제도”를 마련하여 회당 안에서 예배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제도가 예수님당시까지 전해져 내려왔고 제사장들이 성소에서 일을 할때 나머지 백성들은 그 시간에 맞추어 기도를 하였습니다.

눅 1:8~10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제사장의 직무를 하나님 앞에 행할쌔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고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니... 

신약에 와서는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이방인과 유대인의 구분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눅 1:11~13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들은 모두 제사장의 칭함을 얻게 하셨습니다.

계 1:5~6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그래서 신약에서는 신령과 진정의 예배가 되었던 것입니다.

요 4:23~24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그러므로 구약의 제사장들이 짐승의 피를 흘려 육신의 정결을 구하는 제사를 드렸다면 신약시대 성도들은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우리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산 제사로 드리는 영적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찬미의 제사를 드리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히 13:15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그러므로 신약시대인 오늘날에는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드려 하나님께 기쁨드리고 안식일의 축복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2012년 10월 17일 수요일

결국 무너질 그곳 바벨론


무너져버렸다. 침몰하지 않는 배, 일명 불침선(不沈船)이라고 불릴 정도로 견고함을 자랑하던 배가 무너지고 말았다. “신도 이 배를 침몰 시킬 수 없다(God himself Could not sink this ship)”는 문구를 광고에 낼 만큼 사람들의 신뢰 또한 깊었다. 그러나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바로 타이타닉호다. 비극적인 배로 기억되는 타이타닉호는 1912년 4월 10일 2200여 명의 승객 중 1500명의 사상자를 내며 깊은 바다로 사라졌다.

이 일은 지나간 역사에 그치지 않고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경고로 다가오고 있다.

계 18장16-19절 :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이여 세마포와 자주와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것인데 그러한 부가 일시간에 망하였도다 각 선장과 각처를 다니는 선객들과 선인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이 멀리 서서 그 불붙는 연기를 보고 외쳐 가로되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 있느뇨 하며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고 애통하여 외쳐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이 큰 성이여 바다에서 배 부리는 모든 자들이 너의 보배로운 상품을 인하여 치부하였더니 일시간에 망하였도다

무너졌다.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보배로운 상품을 소지하던 견고한 성이 일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한편 그 성의 상품으로 부자가 된 사람들은 멀리서 불타는 성을 바라보며 “이 큰 성과 같은 곳이 또 어디 있겠는가” 하며 애통해 한다. 그렇다면 무슨 연유로 견고한 성이 무너진 것인가. 그리고 그곳은 또 어디인가.

계 18장2절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귀신의 처소이자 더러운 영들이 모이는 곳. 그래서 심판이 예정된 그곳은 영적 바벨론, 즉 거짓 교회다. 사람의 영혼을 멸망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노를 사 결국 무너진 것이다(계 18:13). 그곳을 분별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일을 행하는 교회가 거짓 교회요, 무너질 큰 성 바벨론이 아니겠는가.

눅 22장15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눅 6장5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유월절과 안식일은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버릴 수 없는 진리다.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들이 안식일은 폐지되었다며 일요일 예배가 하나님께서 제정해 주신 절기라고 가르치고 있다. 스스로 거짓 교회 바벨론임을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안타까운 일은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에 매여 있다는 것이다. 구원을 확신할 만큼 그곳에 대한 신뢰 또한 깊다. 마치 “신도 이 배를 침몰 시킬 수 없다”며 타이타닉을 맹신했던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러나 기억해야 한다. 바벨론은 결국 무너진다.

무너지는 바벨론에 있을것이 아니라 이젠 하나님께서 예정해주신 도피처인 시온으로 달려와야 할떄이다(렘4장5절)

아무도 원치 아니하는 역할을 위하여 오신 안상홍님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두실 때 아담, 하와가 뱀의 꼬임을 받아 선악과를 따 먹게 될 것을 하나님께서 미리 아셨을까? 아니면 그럴 리가 전혀 없다고 안심하고 계시다가 뜻밖의 돌발사고에 실망하시거나 큰 충격이라도 받으셨을까?

(사 46:10)처음부터 종말을 내다보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러한 사태를 모르셨다고 말할 수는 없다.
 만약 아담, 하와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범죄하게 될 것을

전혀 예상도 못하시고 사건의 내막도 잘 모르시고 범죄를 유발시킨 옛뱀 마귀를 처벌하거나 통제할 능력도 없는 분이시라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2천 년 전 마리아의 몸을 빌어 한때 아기로 탄생하신 예수님도 비록 외모는 사람의 모습이긴 하지만 근본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하셨는데(사 9:6), 아직도 과거의 유대인들처럼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님을 다르게 이해하고 있다면 영적으로 기형적인 기독교인으로 볼 수밖에 없다. 유대인들이 믿어왔던 여호와 하나님과 사도들이 영접한 예수님은 근본 동일하신 분이요 삼위일체 하나님이신데 잠시 육체를 입으셨다고 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상실되거나 뜻이 바뀐 것도 아니고, 부활하셨다고 해서 예수님이 다시는 육체로 재림하지 못하실 거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능력도 못 믿고 말씀 가지고 장난이나 칠 줄 아는 철부지 어린아이같은 생각일 수밖에 없다.

히 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초림 때에도 스스로 낮추시고 죄인을 섬기는 마음으로 이 땅에 사람 되어 오셔서 진리를 전파하시며 깨닫지 못한 몹쓸 인간들에게 그토록 고초를 당하시고도 뭘 바라시고 또 두 번째 나타나시겠다고 약속하셨을까? 이 예언은 사람으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고 다시는 되풀이하고 싶지 않는 너무나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역할이 아니겠는가? 인류를 구원할 목적이 아무리 선하고 아름답다 할지라도 전 세계 어디에 감히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하겠노라고 나설 사람이나 지도자가 있겠는가?(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참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오실 수밖에 없는 이유는 구원에 이르게 할 진리를 되찾아서 오직 택하신 자녀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희생적인 어버이의 사랑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겠는가? 아버지 어머니 하나님이 아니셨더면 누가 감히 안식일,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 같은 하나님의 절기로 시온을 건설할 수 있었겠는가?

가짜는 자기 영광과 권력을 누리려고 그럴 수 있다 해도 참 그리스도가 두 번째 오실 때는 다윗왕 40년 예언 중에서 남은 37년의 고난의 세월과 험난한 역경의 삶을 다 아시면서도 약속대로 또 오셨고, 마침내 최후 강림하셔서 자녀들을 다시 데리러 오시마 약속하시고 하늘로 올리우시면서 기다려 달라고 당부까지 하시지 않았는가? 이러한 당부는 아버지 어머니를 깨닫고 순종하는 사람에게 해당될 뿐이니 끝까지 믿어지지 않는 분은 너무 예민한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2012년 10월 12일 금요일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믿지못하는자들....




2천 년 전 유대인들이 로마제국의 통치하에서 자유를 빼앗기고 종교지도자들마저 타락하여 극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그래도 어두움을 밝혀주는 등불처럼 선지자들의 예언을 끝까지 믿고 메시야를 갈망했던 사람들은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모세의 글과 이사야와 같은 선지자들의 글을 읽고 들었다. 그러면서 성경에 그리스도가 오실 때에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시고 다윗왕의 이름으로 오실 것이며 처녀의 몸에서 잉태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을 수도 없이 듣고 마음에 새기고 학수고대 다윗왕국이 건설될 영광의 그날들이 속히 도래되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사 9:6~7)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니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사 7:14)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뉴엘이라 하리라 

BC 700년경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장차 다윗왕의 이름으로 오실 한 아기는 바로 처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 탄생하신 구원자 예수님으로서 30세에 요단강에서 침례받으시고 갈릴리 나사렛에서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여 마침내 복음나라인 시온을 건설하시고 야곱의 집에 영원토록 왕노릇하실 예언이 성취되었다.  

(눅 1:31~33)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보신 분들이라면 잘 아시다시피 당시의 유대교 종교지도자들과 그 추종세력들의 사고방식과 메시아를 대하는 태도는 상식 이하의 수준이었다.  하나님을 나름대로 잘 믿어왔다고 자부했던 메시아민족이 예언대로 오신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는커녕 십자가에 못박아 처형하면서도 오히려 뻔뻔하고 당당했던 것 처럼 어쩌다가 그 지경까지 가버렸을까? 그런데 너무나 끔찍했던 유대인들의 실패의 역사가 지나간 역사로 끝나버리고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는다면 이보다 더 다행스러운 일이 또 어디 있을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유대인들의 역사는 재림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에게도 똑같이 재현되고 있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큰 시험과 올무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 슬프고 가슴이 아프다. 기독교의 지도층과 기독교단체의 반응 역시 재림에 대해서는 시큰둥할 정도가 아니라 도리어 이단 운운하는 꼴을 보면 한심하기도 하고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그렇게도 큰소리로 기도하면서 외쳐대던 사람들이 인류를 구원하실 목적으로  친히 사람 되어 이 땅에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하늘에만 계셔야지 결코 육체로 오실 수 없다는 마귀의 사상을 아직도 강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말이라도 하지 말고 거부하고 배척한다면 모르겠거니와 입술로는 존경한다면서 생각은 딴판이니 가증스럽고 가소로울 뿐이다.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하느냐"고 위협하면서 돌을 들고 치려하는 유대인들의 모습은 오늘날의 기독교인들과 비교해 봤을 때 원본과 복사판을 보는 것과 흡사한 느낌이 든다. 정말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면 초림 때뿐만 아니라 재림 때도 얼마든지 다시 육체로 오실 수 있는 일이 아닌가? 하찮은 벌레 같은 인생이나 어떤 유명한 목사가 속임수나 신통력을 발휘하여 사람들 앞에서 잠시 동안 하나님인 것처럼 행세할 수는 있어도 결코 인간이 하나님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천지에 충만하셔서 육체로든 영으로든 어떤 존재로든 누구의 허락이나 인가를 받을 필요가 있을까?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기에 육체로 오시든 영으로 계시든 어떤 모습이든 다 믿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할지라도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거부할 수도 있고 또다시 십자가뿐 아니라 화형까지도 시킬 수도 있단 말인가?

하나님은 언제나 변함없이 북두칠성처럼 늘 한곳에만 계셔야 하고 하늘에 계시다가 잠시 이 땅에라도 오시면 큰일이라도 생긴다는 말인가? 어떤 모습으로 오시든 어느 나라에 오시든 몇 번을 오시든 남성의 모습뿐만 아니라 여성의 모습으로 오시든 그것을 굳이 벌레 같은 인생들에게 물어보고 허락받아서 이 땅에 오셔야 할 만큼 아직도 불쌍하고 무능한 하나님을 믿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안상홍님은 성경이 증거하는 하나님이시다!!!




              성경이 증거하는 안상홍님!!




현재 하나님의 교회 175만 성도는, 성경 66권의 예언에 따라 오신 안상홍님을 재림 예수님으로 믿는다. 그러나 성경의 예언을 믿지 못하는 자들은 성경 어디에 안상홍님이 재림 예수님이라고 예언되어 있느냐, 안상홍님이라는 이름을 성경에서 찾으면 믿겠다는 억지주장을 한다.

이런 논리라면 2천년 전 사도들은 절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영접할 수 없었다. 당시 성경은 (오늘날 말하는)구약성경뿐이었기 때문이다. 구약성경 어디에도 구원자의 이름을 ‘예수’라고 기록한 부분은 없다. 오직 구원자는 여호와 하나님뿐이었다(사 43:11).

그렇다면 사도들은 어떻게 예수님을 구원자로 영접했겠는가.

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구원자를 증거하는 것은 당연하다. 성경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진 사도들은 구약성경에 기록된 구원자에 대한 증거를 그대로 성취하신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을 수 있었다.

사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이라

사 7:14 그러므로 주께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이라 하라

사 35:4~6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수하시며 보복하여 주실 것이라 그가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그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렘 31:3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예수’라는 이름은 없지만, 예수님이 구원자라는 증거는 구약성경 곳곳에 있다. 이를 증거로 예수님께서 구원자임을 알리는 사도들의 목소리를, 신약성경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눅 1:31, 마 1:18~25, 마 11:2~6, 눅 22:20).

이 시대 구원자로 오시는 재림 그리스도 안상홍님도 동일하다. 안상홍님은 무화과나무의 비유에 대한 예언과 다윗왕에 대한 예언, 멜기세덱에 대한 예언 등 성경의 예언을 성취하신 구원자 곧 하나님 이시다. 이를 증거로 하나님의 교회 성도들은 안상홍님을 재림예수님으로 믿으며, 그 이름을 증거하고 있다(패스티브닷컴 ‘다윗의 뿌리, 안상홍님’, ‘멜기세덱, 예수님 그리고 안상홍님', ‘다윗과 영원한 언약’ 참조).

아직도 성경에서 ‘안상홍’님이라는 이름을 찾으라고 억지를 부릴 것인가. 유대인도 그러다가 멸망당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것이다 언제까지 옛적의 범죄를 되풀이할것인가.....

2012년 10월 9일 화요일

이단감별사??? 돈만밝히는 저들


화폐 감별사, 병아리 감별사, 와인 감별사, 보석 감별사, 커피 감별사, 향수 감별사. 흔히들 고소득의 전문직종이라고 일컫는 감별사다. 무엇을 가려내는 데 특별한 재주와 자격을 갖춘 사람을 감별사라고 부르는데 직종도 참 다양하다.

그런데 이중 듣도 보도 못한 일명 듣보잡 감별사가 있다. 이단감별사. 우리나라 직종에는 등록되지도 않은, 사설단체가 이득을 챙기기 위해 만든 직종이다. 물론 그들의 감별에는 전문성도, 신념도 없다. 과연 이단감별사는 어떻게 이단을 감별하는 것일까.

그들의 이단 감별 규정은 이렇다. ‘성경에 있는 말을 하면 무조건 이단으로 간주해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성경에 있는 말을 하지 않으면 과연 무슨 말을 해야 하는가. 이 규정대로라면 오늘날 모든 교회가 다 이단이 된다. 소위 유명목사도 이단이고 성경학자들도 다 이단이다. 말도 안 되는 이단 감별 규정을 두고 자칭 ‘이단감별사’라며 전국을 헤집고 다니는 그들의 감별을 어떻게 믿어야 한단 말인가. 이쯤 되면 그들의 시커먼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지 않는가.

자신들의 잇속만을 위해 우리나라 직종에도 없는 직업을 만들어낸 이유는 바로 ‘돈’이다. 그나마 양심이 있는 한 목사는 이단감별사들이 교계로부터 착복하는 거액의 활동비에 대해 폭로했다. 서울 송파구 A교회 경우 이단감별사가 5년 동안 3억이 넘는 돈을 뜯어냈다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교계에서 이단 시비에 휘말린 기성교회는 매달 2백만 원에서 1천만 원 가까운 돈을 이단대책이라는 명목으로 지원했다. 이단감별사의 눈 밖에 나면 좋을 것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다시 말해 이단감별사의 이단 감별 기준은 성경이 아닌 ‘돈’이었던 것이다. 

미가 3장 5절 내 백성을 유혹하는 선지자는 이에 물면 평강을 외치나 그 입에 무엇을 채워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전쟁을 준비하는도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입에 ‘돈’을 물려주면 ‘평강’이라고 외치고, 그 입에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 바로 ‘이단’으로 낙인 찍는 이단감별사들. 이런 선지자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미가 3장 6절 그러므로 너희가 밤을 만나리니 이상을 보지 못할 것이요 흑암을 만나리니 점 치지 못하리라 하셨나니 이 선지자 위에는 해가 져서 낮이 캄캄할 것이라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이 두렵지 않는가. 그들은 과연 하나님을 믿는다 말할 수 있는가. 기성교단은 언제까지 이런 이단감별사의 말에 현혹돼 성도들의 피 같은 ‘돈’을 그 입 속에 털어 넣을 셈인가. 이젠 참되신 이단 감별사이신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하지 않겠는가...